‘언론의 자유’위협받는 일본 사회에 던지는 날카로운 메시지… 日관객, 표현의 자유는 살아있다!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어서 월차 내고 왔다."
9일 오후, 도쿄 시부야(渋谷)에 위치한 작은 극장 유로스페이스에는 이날 2시 반부터 상영되는 영화 '신문기자'를 보기위해 찾은 관객들로 북적였다.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90석가량의 객석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신문기자'는 일본에선 드문 사회파 영화로 권력 앞에 맞선 저널리스트의 스토리를 그렸음에도 현지 언론들의 이렇다할 관심을 사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순위보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이 적은 젊은층에게도 차츰 인지도를 높여갔다. 7월 22일 기준 관객동원수는 33만명, 흥행수입은 4억엔을 돌파했다.
한국 배우 심은경이 주연한 일본 영화 '신문기자' 포스터
영화는 아베(安倍)정권과 대립한 도쿄(東京) 신문의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 기자가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외무성에서 내각정보조사실로 파견된 엘리트 공무원과 정권의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려는 신문기자의 이야기로,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레 지난해 세간을 휩쓸다 잦아든 아베 정권의 '가케(加計)학원' 스캔들이 떠오른다.
9일 오후, 도쿄 시부야 유로스페이스에서 상영중인 '신문기자'를 보기 위해 모여든 관객들 (사진=최지희기자)
2017년 가케학원은 소속 대학의 수의학부 신설을 정부에 허가받고 2018년 개교했다. 일본에서 수의학부 신설 허가가 난 것이 52년만인 데다 가케학원 이사장이 아베 총리와 밀접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도쿄신문의 모치즈키 기자는 기자회견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 장관에게 진위 확인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형식적인 답변이었고, 이에 그는 무려 23차례나 해당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던진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일본 정부는 '사실 오인으로 인한 질문을 거듭해 기자회견의 의미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을 기자단에게 전달한 것뿐 아니라 도쿄신문측에 '확정되지 않은 일, 단순한 추측에 근거한 질문으로 국민에게 오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항의문을 보냈다.
영화는 아베정권과 대립한 도쿄신문 모치즈키 기자가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극중 사회부 기자로 분한 배우 심은경 (이미지: 영화 신문기자 예고편 캡쳐)
이와 관련해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올해 7월 5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일본은 언론의 자유가 있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정부는 가끔 독재 체제를 연상시키는 행동을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신문은 일본 정부의 언론관을 비판하면서 모치즈키 기자의 사례를 들며 상황을 꼬집었다.
일본의 언론 자유 수준은 2012년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급격히 낮아졌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World Press Freedom Index) 평가에서 일본은 2011년 32위에서 올해 4월에는 67위로 하락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눈이 가려진 양'. 한 네티즌은 이를 두고 "우리 일본 국민을 상징한다. 정보조작으로 눈에 어두워진 맹목적인 우리를" 라고 설명했다. (이미지: 영화 신문기자 예고편 캡쳐)
한편 영화를 접한 이들은 가장 먼저 왜 주인공이자 기자역할인 요시오카 에리카역이 일본 배우가 아닌 한국 배우인지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일본 경제지 비즈니스 저널에 따르면 일본의 유명 배우들이 반정부 이미지가 붙는 것을 꺼려해 출연을 고사했고, 결국 이 시기 일본 진출을 본격화하던 한국 배우 심은경에게 역할이 돌아갔다.
보도에 따르면 제작진을 구성할 때도 "TV업계에서 퇴출될지 모른다"며 거절하거나,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도 "엔딩크레딧에서 빼달라"는 이들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또다른 일본 매체인 아사히예능에 따르면 해당 배역의 제안은 유명 여배우인 미야자키 아오이(宮崎あおい)와 미츠시마 히카리(満島ひかり)에게 들어갔으나 두 배우 모두 출연을 포기했다.
평일 낮시간대 상영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객석은 빈자리가 없었다. (사진=최지희 기자)
심은경이 요시오카 역을 맡으면서 캐릭터 설정도 바뀌었다. 당시에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만큼 모치즈키 기자와 흡사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극중에서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것으로 변경됐다.
그렇다면 영화를 본 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일본의 포털사이트에서 신문기자를 검색하자 일본 네티즌들이 남긴 감상에는 "찝찝하게 남아있던 의구심들이 확실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퍼즐 조각을 찾아 끼운 것처럼. 만든 이들의 용기가 대단하다", "꽤 화제가 되고 있어서 기대감을 갖고 영화관을 찾았다. 많은 리뷰들을 본 뒤였지만 작품을 본 후 느낀 점은 무엇보다 '이런 영화를 잘도 만들어냈구나'하는 것이었다", "표현의 자유는 살아있다!"와 같은 리뷰가 눈길을 끈다.
최근에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를 주도하는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이달 5일 트위터에 "교도 통신은 아직도 (문제있는 기사에 대해) 정정도 설명도 삭제도 하지 않고 있다"며 특정 언론에 압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가 지적한 기사는 베이징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장관회의에서 한일 양국이 충돌한 것과 관련된 기사였다. 세코는 지난달 말 NHK에 대해서도 " ‘수출규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수출관리’라는 말을 써야한다"며 압박했다.
"일본에서 민주주의는 형태만 있으면 돼"라는 영화 속 대사가 상징하듯 일본 사회는 역사문제와 개헌론 등에서 과거보다 우경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던 분위기는 나날이 위축되고 있다. 영화 '신문기자'는 작지만 이유있는 돌풍으로 일본이 처한 이같은 현실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본 기사는 프레스맨과의 컨텐츠 제휴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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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심은경 주연 일본영화 '신문기자' 흥행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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